현기영의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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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진열대에서 고르다. 책 표지가 눈에 가 첫장을 펼쳤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두말 않고 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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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생.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노년에 이른 몸의 물리적 변화와 심경을 묘사한다.

 

“아니, 나로서는 죽음 그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은 것 같은데,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 이빨이 하나 흔들리다가 빠질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두 개가 빠지자 그제야 아하, 내가 늙었구나! 하는 괴로운 탄식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눈시울도 입꼬리도 점점 아래로 처진다. 코 아래로, 양쪽 입꼬리 아래로 여덟팔자의 금이 새겨지는데, 바로 이 금이 부당하게도 멀쩡한 사람을 우울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만드어버린다. 성샘이 점점 말라가기 떄문에 그럴까?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향긋하기만 하던 젊은 여자의 짙은 화장품 냄새가 이제는 살충제의 유독성 기체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어진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내 몸을 끌어당기는 잔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p12

“그래서 이제 나는 내 안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도시 밖으로 자주 나간다. 자연은 노년과 잘 어울린다. 조만간 돌아가야 할 곳이 거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노경에 이른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재발견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얻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옛사람의 생사관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옛사람들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p14

조락(凋落)의 시간, 갈색 단풍잎 하나가 잔풍한 대기 속에서 천천히 뱅글뱅글 맴돌면서 낙하한다. 그 뒤로 고추잠자리 한 마리 조용히 빗금을 그으면서 낙하한다. 잔디 위에 가볍게 얹힌 고추잠자리, 네 날개를 가지런히 편 아름다운 자세, 날개들이 미약하게 바르르 떤다. 마지막 경련, 그리고 마침내 정적, 한 생애가 끝나는 순간이다. 단풍잎 또 하나 할랑거리며 떨어진다.
오마르 하이얌이 다시 노래를 부른다.
“마시게! 네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모르니, 마시게! 네가 왜 가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니, 마시게!”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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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도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 그리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낭패인 일. 슬그머니 갑자기 찾아와 뜻밖의 일이 되고 말겠지만, 조락의 시간에 부담없는 마음을 지니길. 한잔 마시게~ 가볍게 가는 일

박혜란의 “결혼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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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인 후배들에게 결혼을 권하곤 한다. 서른 일곱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기도 했고, 미혼으로 사느것보다 가정을 꾸려서 살아가는 게 그 나이에 자연스럽다는 논리다.  “결혼말고 할 만한 게 있을까?” 말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아빠가 되는 일’은 자신에게 전례없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아내가 들으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겠지만 말이다. 박혜란 교수의 “결혼해도 괜찮아”를 읽게 된 건 결혼해도 괜찮은 이유를 발견하고 싶어서였는데, 내가 얻은 것은 결혼한 아내가 느꼈을 법한 걸 재확인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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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굉장히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아는 걸 과시하지 않는 것 같아 ‘아, 참 겸손한 사람이구나’하고 존경심을 품었고 결국엔 사랑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 남자의 실체를 알고 말았다. 그는 겸손해서 과묵했던 것이 아니라 워낙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과묵했다는 것을. 나는 사기를 당했다고 앙앙댔는데 솔직히 그는 나를 속이지 않았다. 내가 내게 속았을 뿐. 그리 어리서었으니 결혼을 했지. 눈에 꽁깍지가 씌우지 않고 결혼은 불가능하다.” …

“타고난 결혼주의자였던 나는 결혼의 쓴맛 단맛을 이미 맛본 결혼경략자였음에도 그때만 해도 결혼을 자기 인생 계획서에 끼워 넣지 않은 그 후배들에게 ‘그래도 결혼은 한 번쯤 해 볼만한 거’라느리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라’는 말을 조언이랍시고 하면서 은근히 우월감을 과시하곤 했다. 지금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결혼했다는 게 무슨 훈장이라고. 그들은 뭘 몰라서 결혼을 하지 않은게 아니다. 그들은 너무 잘 알아서 결혼을 안 하는 거다. 경험해 보지도 않고 결혼의 속성을 꿰뚫은 그들이 나보다 인생을 아는 사람들이다. 결혼에 목매달은 내가 뭘 몰랐던 거다.” …

“하루아침에 남자가 변한 걸까? 차라리 그랬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가 원래 처음부터 나한테 사기를 친 걸까? 그랬다면 사기꾼인 게 드러난 순간 그를 원망하고 떠나 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변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거다. 연애할 때의 나와 결혼했을 때의 내가 딴판이었다는 거다. 내 속에서도 가장 먼저 내 눈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콩까지 때문에 흐릿했던 시력이 갑자기 좋아졌다는 거다. 그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성격들이 하루아침에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심지어 처음부터 유일한 결혼 상대로 못 박았던 그가 실제로는 전혀 결혼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라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시내 한목판 다방에서 꼬박 두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아무리 무던한 성격이지만 처음부터 두 시간을 기다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삼십 분은 ‘오늘도 또 늦는군’ 혀를 차며 가볍게 기다린다. 다음 삼십 분은 분노가 서서히 쌓여 간다. 드디어 에이 가 버려야 다음번에 정신 차리고 시간 맞춰 나오겠지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심정을 면전에서 표시행지 하는 마음으로 삼십 분을 또 보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 ‘나오다가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닐까’라는 걱정에 자리를 못 뜬다. 다방 마담의 눈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제발, 제발’ 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그때 봉두난발을 한 남자가 다방 문을 들어선다. 아이쿠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자존심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으로 그를 맞는다. 남자는 해맑은 표정으로 변명이랍시고 던진다. ”미안해, 늦잠을 잤잖아.“ 아 나는 오늘도 헤어지기는커녕 남자에게 연애의 기본 에티겟을 가르칠 찬스조차 놓치고 말았다. “…

“어느 여름인가, 당시 인기 약속장소였던 덕수궁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뜨거운 한낮, 무려 두 시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걱정은 점점 커져 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대문 밖에서 우체부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 “전보요” 내용은 어이없음 그 자체!, ‘친구들과 부산 왔음, 미안.’ 그때 헤어졌어야 했는데. “…

“잘 아는 선배 한 분은 남편이 평생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해 불만이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이혼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겨룩은 남편과 사별할 때까지 이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좀 못된구석이 있어야 그 핑계로 갈라서지. 사람 자체는 너무 착해서 탈일 정도인데 단지 돈 때문에 이혼핶ㅆ다면 자기가 너무 나쁜 여자인 것 같아서 할 수가 없었어. 차라리 외도를 하거나 한 대 때리기라도 했으면 옳다구나 하고 이혼을 했을 거야라고 털어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비슷하네, 속을 썩이기는 했지만 근본은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제였다. 남편감으로는 결점투성이지만 한 인간으로 놓고 보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객관적 시각이이혼을 방해했다는 말이다. 궁색한 핑계라 해도 할 수 없다.”

“결혼 해서 좋은 점이 고작 아이 낳은 거예요?” 결혼 전 내가 품었음직한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나올 수 있는 이 비웃음에 대해선 ‘아이 낳는 게 고작이 아니라는 걸 결혼해 보면 이해할 거다’라는 꼴통 같은 응수로 마무리하겠다. 그 밖에 결혼해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매우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성숙’이 아닐까 싶다. 주위를 둘러보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성숙한 인간들이 널려 있고 결혼한 여자들 가운데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결혼이 인간을 성숙시킨다는 일반론은 지극히 위험하다. 다만 내 경우를 말하자면, 만약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봐줄 수 없는 인간이었을게 분명하는는 이야기다. 지금도 나이만 엄청 먹었지 나이에 걸맞은 혜안은커녕 치졸한 짓을 저지를 때가 너무 많지만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온 건 순전히 결혼을 통해 갈고 닦여진 결과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에세이 ‘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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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는 75년생이다. 동갑이다. 친밀감이랄까, 그의 소설을 읽어 본적은 없지만, ‘책 읽는 방법’을 읽었다. 속독을 배격하고 슬로리딩(slow reading)을 주장하며 깊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을 전해 인상적이었다. ‘나란 무엇인가’에서는 서구 근대의 산물인 개인(indivisual) 개념을 전제해서는 다면의 자신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일은 어렵다 했다. 분인을 주장한다. 개인은 분인(divisual)이며,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 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고 이를 표현하는 직업 소설가의 시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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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동요는 시대를 불문하고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을 한 번도 안 하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판가름 나지 않으면 끔찍이 괴롭다. 돌이켜보면 장래가 너무나 막연했던 나의 대학 시설도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암울했다.” …

“대학시절에 친구가 물어보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 바로 ”장래에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이었다. 그 물음에 시원스럽게 선뜻 대답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결국 소설가가 되었고, 덕분에 최소한 직업 선택의 불안감은 사라졌지만, 정체성과 관련된 동요까지 다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

그리고 만약 ‘진정한 나’가 단 하나뿐이라면, 자기 이미지의 부정은 자기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지고 만다. ….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indivisul’ 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수 있는 dividual’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진정한 나’라는 개념은 인간을 격리시키는 감옥이다.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면 타자와의 관계를 최대한 단절시키는 좋다. 그러나 ‘최후의 변신’의 주인공처럼 결국 해보면, ‘진정한 나’는 환상임을 통감할 뿐이다. ….

인간은 단 한번뿐인 인생을 가능하면 다양한 나로 살고 싶어 한다. 대인 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나를 즐기고 싶어 한다. 언제나 똑같은 나로 감금되어 있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툼 플레이를 시도하는 등의 ‘변신 소망’은 픽션 세계에 대한 분인화 소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 책은 개인이란 본래 불가분, 즉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의미였다는 얘기로 출발했다. 이제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주목해줬으면 하는 점이 ’(더 이상)‘이라는 부분이다. 개인은 분명 나뉠 수 없다. 그러나 타자와는 명료하게 나뉜다. 구별된다. 따라서 의무나 책임이 독립된 주체로 간주된다. 영광을 얻으면 그것은 타자와는 다른 당신이 이뤄낸 일이다. 타자는 전혀 관계가 없다. 죄를 저지르면 그것 역히 당신이 한 일이며, 다른 인간은 관계가 없다. 부자가 되거나 가난밴이가 되거나 모두 타자와는 나뉘는 당신만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분인화라는 현상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이런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타자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분인의 집합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 절반은 타자의 덕이자 타자의 탓이다.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분할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논리학보다 발전한 이 단어의 의미다. 그런데 분인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분할 불가능하다. 좀 더 강한 표현으로 바꿔보자. 개인은 인간을 낱낱으로 분리하는 단위이며, 개인주의는 그러한 사상이다. 분인은 인간을 낱낱으로 분리시키지 않는 단위이며, 분인주의는 그러한 사상이다. 분인주주의는 개인을 인종이나 국적이라는 보다 큰 단위로 조잡하게 통합하는 것과는 반대로 단위를 작게 만듦으로써 아주 면밀한 유대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상이다. 우리는 마땅히 가까운 사람의 성공을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분인을 통해 그 성공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마땅히 가까운 사람의 실패에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실패의 원인은 분인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서도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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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믿는다. 나는 나로부터 왔다. 윤회를 믿는다. 내게 있었던 일들에 의해 나는 움직이고 활동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의 ‘선생님, 요즈음 어떠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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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 ‘선생님, 요즈음 어떠하십니까’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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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p13

“저 혼자의 생활이야 어쨌든 꾸려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 되면 깡통을 들고 나설 각오입니다. 죄 될 짓만 안 하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보통입니다. 선생님님을 알게 되어 이젠 외롭지도 않습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몸조심하시길 빕니다.p18

“그러나 괴로울때마다 저는 권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 결코 참된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 봅니다.“p22

“잠시도 선생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멍하니 앉았을 때나 길을 걸으면서도, 정말입니다. 선생님의 백분지 일도 따르지 못하는 저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부끄러워집니다. 남들은 별로 나쁘게 보지 않지만, 제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인간인지 괴롭기 한이 없습니다. 열 가지지 중에서 한 가지도 위선이 아닌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가슴을 찢고 싶도록 괴로워집니다.‘ p26

“선생님, 써야 할 작품은 여러 편 구상해 놓고 아무래도 역량이 달립니다. 좀 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해야겠어요. 꼭 좋은 동화 쓰겠습니다.“p31

“힘이 돌아가시고, 또 쓰시고 싶으시면 쓰십시오. 그러나 동화를 쓰시는 것이 선생님의 본질이고, 여기만 전념하시기 위해 남은 생명을 바치시는 듯한 선생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결과가 될 것 같아 죄송합니다.“p35

“선생님은 저의 동화를 자꾸 좋게 보시려 하는데, 저는 아직 만족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 역량 가지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일인(日人)작가들의 작품을 능가할 수 있는 동화를 단 한편이라도 쓰고 싶어요.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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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헤아려 마음을 나누었던 오랜된 편지글이다. 안부를 묻는 편지글에서 ‘사람의 마음’을 느낀다. 걱정하는 마음, 헤아리는 마음, 조심스러운 마음, 존중하는 마음, 격려하는 마음, 자신의 길을 걷고자 노력하는 마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박성제의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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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ly로 구독하는 블로그가 있다. mbc 김민식pd의 ‘공짜로 즐기는 세상’인데 글이 재미있고 유익하다.  읽고 보고 경험한 생각한 것들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유한다. 독학으로 외국어를 학습한 방법과 원칙을 알려준다. 퇴직이후 새로운 꿈을 전업 작가로 정한 후부터 스스로 몇가지 약속하여 인생 2막을 준비한다. 하루영어 문장 10개 외우기, 하루 책 한권 읽기, 하루 블로그 글 한 편쓰기 등등. 나아가 그러한 약속이 “제가 제 자신을 대접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의미있게 살고 싶고, 보람을 느끼며 매일매일 이어가고 싶기 때문에 스스로의 약속한 바를 행하며 이러한 경험을 블로그에 공유한다. 좋은 기운을 느낀다. 그의 태도와 자세가 부럽다. 그는 mbc pd인데 노조활동등의 이유로 좌천되어있다. 원망과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즐겁게 일하고 배운다. 얼마전 mbc 해직기자 박성제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알고 보니, 페친이다. 인연일까? 지난 주에 박성제씨의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를 숨책에서 샀다. 미루지 않고 읽다.

02

“어이, 수습! 기자가 뭐 하는 직업인 줄 알아?”
“새로운 정보를 찾아 뉴스를 만들어서 시청자들에게 전화는 일 아닙니까?”
“새로운 정보? 웃기고 있네. 그따위 정신으로 기자 하려면 당장 그만뒤, 인마.”
“그럼 기자가 뭐 하는 건데요?”
“잘 들어, 기자는 말이야. 힘센 놈과 싸우는 직업이야. 우리나라에서 힘쎈 놈들이 누군지 알아? 청와대, 여당, 검찰, 재벌, 이런 놈들이야. 우리가 이런 놈들하고 한판 붙어서 힘없는 밥풀때기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거야. 언론이 힘센 놈들하고 싸워주지 않으면 밥풀때기들은 늘 당할 수밖에 없거든.” P33

“너 같은 부드주아 한량이 노조 운동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노조 운동을 한 것은 거절을 못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나는 그저 원칙을 버리기가 싫었다. 기자회장 박성호씨고, ytn의 노종면 기자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평범하고 일밖에 모르는 언론인이었다.p125

“뭔가를 해야만 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친구 순강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을 자주 찾게 된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강박 같은게 나를 순강이에게 인도했다. …“성제야, 나 죽으면 우리 마누라랑 딸내미들 어떻게 하냐.” “죽긴 왜 죽어, 인마, 네 딸 고3이잖아. 대학도 보내고 사위도 봐야지” 순강이는 가족을 걱정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를 화장하던 날, 부인과 두 딸은 너무도 서럽게 울었다. 누가 어떤 말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나는 한마디로 건네지 못했다. 친구를 잃은 슬픔도 컸지만 남겨진 가족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계속 나를 괴롭했다. 친구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 그러다 결국 내가 얻은 결론은 간단했다.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말자. 즐겁게 살자. 내가 건강하고 내가 즐거워야 내 가족이 행복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하지도 말자. 내 젊음을 바친 mbc를 망쳐놓고 나를 망쳐놓은 미운 놈들을 잊을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화내지 말자. 그들을 떠올리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럼 내가 지는거다. 즐겁게 살아야 한다. p130, 132

“한번 마음먹으면 모든 것을 단칼에 해치우는 나의 사전에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공방을 찾아갔다.“p138

“정확히 사흘 뒤, 나무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오자 나는 쏟살같이 공방으로 달려갔다. 공방 한가운데 있는 작업대에 커다란 레드오크 상판이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먼저 샌딩을 해야 했다.“p140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외로운 공방에서 지켜봐야 했다.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 말고는.“p148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인다. 잘 되든 못 되든 모든 결과는 내 책임이다.“p271

“나는 즐겁게 살고 싶었다. 돈을 못 벌어도 좋았다. 스피커를 디자인하고 내 손으로 하나하나 완성해가면서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꼈다. 즐겁고 행복했다.“p272

“원래 나는 성질이 급한 편이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누가 어떤 음악이 좋다고 하면 당장 음반 매장으로 달려갔고, 좋다는 영화가 나오면 개봉 첫 날 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급한 성질은 mbc기자가 되면서 더욱 증폭됐던 것 같다. 한 달 만에 쿠르베의 디자인과 개발을 끝내고 2주마다 하나씩 작은 모델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20년 동안 몸에 밴 기자의 속전속결 정신이 큰 역할을 했다.“p275

 

03
조직적으로 부당한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다. 세상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 비루한 잣대를 명분으로 내세워 대접한다. 20년간 일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좌천되어 본업과는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어떤 이는 가슴속에 치미는 화를 감당하지 못하여 건강을 잃게 되기도 한다. 원망과 한을 풀 길이 안보일 때 어두운 절망에 갇히기도 한다. 한 분은 다가올 앞날을 대비하여 조용히 거하면서 인생 2막을 준비한다. 한 분은 쫓겨나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살고 있다. 즐겁지 않은 상황이지만 즐겁게, 즐거움을 찾으면서. 집중해서 단호하게 산다.

쑨루이쉐의 6년 교육 – 아이의 정신이 성장하는 유아기에 필요한

01
금요일 반차를 내고 퇴근했다. 오후 5시. 어린이 집 하원시간에 맞추어 갔다. 3층 계단을 오르는데 아내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 아이가 놀란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반가워하며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애교를 부린다. “아빠아~”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와 아이와 함께 씻는다. 차가운 물 세례에 아이가 “차가워~차가워” 한다. “시원하다고? ” 웃는다. 아이도 함께 웃는다. 가벼워진 몸으로 자리에 눕고 동화책을 읽는다. 돼지가 등장한다. 아이에게 제안한다. “우리 돼지 보러 동물원 가면 어떨까?” 아이가 말을 받아 제안한다. “좋아. 주말에 동물원가면 어떨까?” “좋아~” 토요일은 더웠다. 일요일도 더웠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를 뵙고 점심을 먹는다. 아이가 기억력이 좋다. 할아버지 뵙고 난 후에 동물원 가면 어떨까 거듭 제안한다. 재난본부에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무더운 오후 양주시 근방에 숲속의 동물원으로 향한다. 어린 돼지가 돌아다닌다. 아 돼지가 있다. 쓰다듬고 논다. 주인장이 곤충, 도마뱀, 뱀, 미꾸리지, 개구리를 손 위와 목주위에 올려준다. 아내도 신이났다.

02
쑨루이쉐의 아이의 정신이 성장하는 유아기에 필요한 “6년교육”을 읽다. 몬테소리 교육관에 대한 해설이다.

“유아기에 필요한 것은 어른의 ‘주입’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를 잘 지킨다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P15

“아이를 사랑하는 문제는 우리의 현재의 경험으로 아이를 대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경험은 우리가 성장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P7

“저자의 깨달음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의 지능은 감각에서 오고, 아이의 감각 경험은 어른이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개성과 창의성은 같아서 가르칠 수 없다. 욕을 얻어먹거나 매를 맞고 자란 아이는 고난이 사물의 본질을 볼 능력을 잃게 만들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이는 일생 동안 고통스런 유년 시절과 투쟁하고 자존감을 찾으며 자신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은 밥을 먹는 것과 같다. 소화를 하면 우리의 일부분이 된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다.” P8

“인류의 성장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큰 진리는 사랑이다. 사랑 없는 성장은 이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이다.” P123

“이런 발전을 위해서는 아이가 스스로 자유를 가져야 한다. 이 자유는 영혼의 자유다. 한 아이가 물장난을 치고 싶어한다. 물장난은 지금 아이의 발전에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속에 물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몬테소리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했다. 한 아이가 외할머니 집에 왔다. 아이는 잔디위 수도꼭지를 틀러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무서워서 망설였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물장난 치고 싶으면 쳐” 그러나 아이는 말했다. “틀면 안돼요. 보모 아주머니가 물장난 치면 안된다고 했어요.” 외할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지금 없어, 외할머니가 틀어줄게.” “안돼요. 그래도 안 돼요.” 아이는 보모의 노예가 되었다. 이미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인격은 대체되어버렸다.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자신을 억압하면 인격과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억압은 분명히 연속적인 행위이며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억압했다면 어떻게 하죠?”하고 묻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이 있다. 적극적인 면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다면 아이의 성장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소극적인 면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면 아이의 인격은 점차 다른 것이 되어버려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독립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몬테소리는 “독립할 수 없다면 자유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때 자유는 소중한 자질로 변한다. P124~125

03
육아란 무엇일까? 문득문득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아이였다. 육아의 기간은 아빠, 엄마 스스로가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어른이면서 아이가 되는 시간. 자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아이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시간. 저자의 주장처럼 아이는 설계하여 주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과 시간을 마련하고 또한 우리자신도 아이의 시간을 갖는 것.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의 시간을 허하는 것.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아이의 시각과 시점에서 사는 것.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01
누구에게나 분기점이 있다. 지나고 나서야 그 순간이, 하나의 선택이, 누군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여기서 저기로 가게했구나 알게 된다. 2000년 겨울 대학시절, 과방에서 후배 대영이가 말했다. “형 0000 야학에서 교사를 모집한다는데 가볼래요?” 불쑥 “그래”라는 말이 나왔다. 후배와 야학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2001년 겨울, 서울 구로역 근처에서 어느 모임에 간 적이 있었다. “너 요즈음 뭐하냐? 사무국에 나와 일해볼래?” “네 그럴께요.” 그때 나는 젊었고 가벼웠다.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을 읽는다. 그녀가 말한다.

02

“물살을 타고 대지의 깊은 주름 속으로, 창조의 시간까지 거슬로 올라가고 싶었다. 안내인에게 ‘네 갈게요.’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놀라는 것 같았다. 고작 20분 정도의 설명만 듣고 1~2주 동안의 여정을 결정해 버린것이다. 이제 무리로 돌아가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잠시후 돌아온 그는 우리가 보험에 들어 있지 않아 함게 갈 수 없다는 안전요원의 말을 전했다. 우리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사막으로 길을 나섰다. “네”라는 대답이 내 인생의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고, 그것은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p57

“그 작은 모험 이후로, 내게는 줄곧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준 좌우명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말자’가 생겼고 그때까지 본능적으로 물리쳤던 초대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p58

03

여기서 저기로 가는 선택이고 그런 기회가 눈 앞에 왔을 때 가볍게 결정한다. 그런 가벼운 마음이 그립다.

김탁환의 원고지에

소설가 김탁환의 ‘원고지 –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를 잠시 읽다.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기 위해서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사람들 속의 진심에는 왜 항상 눈물이 따르는가? 안타까운 일들은 여전히 있으며, 눈밝은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 안타까운 진실을 자신과 사람들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언제나 얼마간의 눈물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런 영화가 있다. 첫 대목을 접하는 순간, 배우가 흘깃 나를 향해 눈길을 보내는 순간. ‘아, 이건 나와 같은 족속이 만든 거다.’ 그런 느낌이 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랬고 ‘박하사탕’이 그랬고 오늘 본 ‘파이란’이 그랬다. 그러면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막혔던 부분들을 저 감독들은 어떻게 뚫어나가나 찾기 시작한다.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삶은 흔히 죽음에 닿아 있다.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렇게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차디차게 보여준다. 이거다. 이토록 추잡스럽고 속된 것이, 돈에 목숨 거는 것이, 속이고 속는 것이 삶이다. 삶에 대하여 거창하게 논하는 새끼들 말, 전부 거짓이다.

인물들은 점점 고립된다. 자기가 몸 담고 있던 공간에서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왜 고립되는지, 그 고리븨 결과가 어떨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구석이 있다. 깡패든 밤무대 밴드든 사기꾼이든 그 딴 건 중요하지 않다. 많이 타락했어요 그들은 자신 안에서 한결같은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그리고 삶을 바꾸고 싶어한다. 아, 그 바꿈은 성공하지 못한다. 바꾸려 했다는 이유로 다치고 죽는다.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바꾸려 하다간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들도 그런 위험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바꾸겠다고 한다. 바꾸지 않고는 단 하루를 살 수 없다 한다.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서른 살이 넘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내 삶을 충고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삶을 바꾸어야 한다면 아, 그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대부분 ‘진심’이라고 하는 그 무엇. 나를 변함없는 나로 만들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그 무엇에는 항상 눈물이 따른다.  – p112-113(김탁환의 원고지. 2003년 6월 7일 )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 어느 스타벅스 벽면의 워터 마크

2005년 8월 말,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남동부를 폐허로 만들었다. 가장 피해가 많았던 지역은 뉴올리언스. 폰차트레인 호수의 제방이 붕괴되면서 도시 대부분을 물에 잠겼다. 강제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아래 사진은 뉴올리언스 어느 스타벅스 벽면에 그어진 그 당시 수위표시다. 벽면 줄에는 KATRINA가 박혀있다. 줄 하나 긋는 간단한 장치이지만 이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갖게한다.  위기를 기록하고 이를 알리는 일은 진상조사위원회 등 기관만의 몫은 아니다.  위기경험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축적되어야 하며,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적 지혜로서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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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Katrina’s high-water mark on the wall of a Starbucks in New Orleans’ Lakeview neighborhood.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두려운 마음’

일본 경영의 신(神)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책 ‘일과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를 읽다가 발견한 대목.

사람의 마음에 그런 두려움이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야 한다네, 물론 두려움에 위축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일종의 조심스러움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 하지. 신앙을 갖고 있으면 ‘신에게 죄송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네. ‘세상이 무섭다’라거나 ‘세상이라는 눈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은 그런 두려움을 가지면 자신의 몸가짐을 조심하기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줄어든다네. 이렇듯 두려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네. p68~69 일과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드러내어 사람의 길을 밝힌다. 사람의 감정중에 근원적인 두가지, 감사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이 두마음에서 인정(人情) 같은 따뜻한 감정이 생겨나며 감사와 두려움을 모른다면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할 수 없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