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의 철학에세이 ‘나란 무엇인가’

01
히라노 게이치로는 75년생이다. 동갑이다. 친밀감이랄까, 그의 소설을 읽어 본적은 없지만, ‘책 읽는 방법’을 읽었다. 속독을 배격하고 슬로리딩(slow reading)을 주장하며 깊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방법을 전해 인상적이었다. ‘나란 무엇인가’에서는 서구 근대의 산물인 개인(indivisual) 개념을 전제해서는 다면의 자신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일은 어렵다 했다. 분인을 주장한다. 개인은 분인(divisual)이며,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 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관찰하고 이를 표현하는 직업 소설가의 시선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02

“정체성의 동요는 시대를 불문하고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을 한 번도 안 하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판가름 나지 않으면 끔찍이 괴롭다. 돌이켜보면 장래가 너무나 막연했던 나의 대학 시설도 뭐라 표현하기 힘들 만큼 암울했다.” …

“대학시절에 친구가 물어보면 가장 고통스러웠던 게 바로 ”장래에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이었다. 그 물음에 시원스럽게 선뜻 대답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는 결국 소설가가 되었고, 덕분에 최소한 직업 선택의 불안감은 사라졌지만, 정체성과 관련된 동요까지 다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

그리고 만약 ‘진정한 나’가 단 하나뿐이라면, 자기 이미지의 부정은 자기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지고 만다. …. 한 명의 인간은 ‘나눌 수 없는indivisul’ 존재가 아니라 복수로 ’나눌수 있는 dividual’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진정한 나’, 수미일관된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

나라는 존재는 외따로 고독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다. 그렇다기보다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한다.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진정한 나’라는 개념은 인간을 격리시키는 감옥이다. 만약 그것을 믿는다면, ‘진정한 나’로 살아가려면 타자와의 관계를 최대한 단절시키는 좋다. 그러나 ‘최후의 변신’의 주인공처럼 결국 해보면, ‘진정한 나’는 환상임을 통감할 뿐이다. ….

인간은 단 한번뿐인 인생을 가능하면 다양한 나로 살고 싶어 한다. 대인 관계를 통해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나를 즐기고 싶어 한다. 언제나 똑같은 나로 감금되어 있는 것은 큰 스트레스다.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툼 플레이를 시도하는 등의 ‘변신 소망’은 픽션 세계에 대한 분인화 소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 책은 개인이란 본래 불가분, 즉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의미였다는 얘기로 출발했다. 이제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주목해줬으면 하는 점이 ’(더 이상)‘이라는 부분이다. 개인은 분명 나뉠 수 없다. 그러나 타자와는 명료하게 나뉜다. 구별된다. 따라서 의무나 책임이 독립된 주체로 간주된다. 영광을 얻으면 그것은 타자와는 다른 당신이 이뤄낸 일이다. 타자는 전혀 관계가 없다. 죄를 저지르면 그것 역히 당신이 한 일이며, 다른 인간은 관계가 없다. 부자가 되거나 가난밴이가 되거나 모두 타자와는 나뉘는 당신만의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분인화라는 현상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이런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은 타자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분인의 집합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 절반은 타자의 덕이자 타자의 탓이다.

개인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분할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논리학보다 발전한 이 단어의 의미다. 그런데 분인은 타자와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분할 불가능하다. 좀 더 강한 표현으로 바꿔보자. 개인은 인간을 낱낱으로 분리하는 단위이며, 개인주의는 그러한 사상이다. 분인은 인간을 낱낱으로 분리시키지 않는 단위이며, 분인주의는 그러한 사상이다. 분인주주의는 개인을 인종이나 국적이라는 보다 큰 단위로 조잡하게 통합하는 것과는 반대로 단위를 작게 만듦으로써 아주 면밀한 유대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상이다. 우리는 마땅히 가까운 사람의 성공을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분인을 통해 그 성공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마땅히 가까운 사람의 실패에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실패의 원인은 분인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서도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03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믿는다. 나는 나로부터 왔다. 윤회를 믿는다. 내게 있었던 일들에 의해 나는 움직이고 활동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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