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의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01
도서관 신간 진열대에서 고르다. 책 표지가 눈에 가 첫장을 펼쳤다. “노년은 도둑처럼 슬그머니 갑자기 온다. 인생사를 통하여 노년처럼 뜻밖의 일은 없다.” 두말 않고 빌린다.

02
41년생.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노년에 이른 몸의 물리적 변화와 심경을 묘사한다.

 

“아니, 나로서는 죽음 그 자체는 그리 두렵지 않은 것 같은데, 죽어가고 있음을 아는 것이 고통스럽다. 이빨이 하나 흔들리다가 빠질 때는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두 개가 빠지자 그제야 아하, 내가 늙었구나! 하는 괴로운 탄식이 입 밖으로 새어나온다. 눈시울도 입꼬리도 점점 아래로 처진다. 코 아래로, 양쪽 입꼬리 아래로 여덟팔자의 금이 새겨지는데, 바로 이 금이 부당하게도 멀쩡한 사람을 우울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만드어버린다. 성샘이 점점 말라가기 떄문에 그럴까?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향긋하기만 하던 젊은 여자의 짙은 화장품 냄새가 이제는 살충제의 유독성 기체처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어진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고 내 몸을 끌어당기는 잔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 나 자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p12

“그래서 이제 나는 내 안의 죽음을 달래기 위해 도시 밖으로 자주 나간다. 자연은 노년과 잘 어울린다. 조만간 돌아가야 할 곳이 거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노경에 이른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재발견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얻고 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옛사람의 생사관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옛사람들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p14

조락(凋落)의 시간, 갈색 단풍잎 하나가 잔풍한 대기 속에서 천천히 뱅글뱅글 맴돌면서 낙하한다. 그 뒤로 고추잠자리 한 마리 조용히 빗금을 그으면서 낙하한다. 잔디 위에 가볍게 얹힌 고추잠자리, 네 날개를 가지런히 편 아름다운 자세, 날개들이 미약하게 바르르 떤다. 마지막 경련, 그리고 마침내 정적, 한 생애가 끝나는 순간이다. 단풍잎 또 하나 할랑거리며 떨어진다.
오마르 하이얌이 다시 노래를 부른다.
“마시게! 네가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모르니, 마시게! 네가 왜 가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니, 마시게!” p17

 

03
노년도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 그리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낭패인 일. 슬그머니 갑자기 찾아와 뜻밖의 일이 되고 말겠지만, 조락의 시간에 부담없는 마음을 지니길. 한잔 마시게~ 가볍게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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