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의 순례

한국일보 [신한국견문록] 서울 은평구 불광대장간을 읽다가 대장간 주인장의 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얼마 전에 단골손님 한 분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는 중에 불광대장간을 찾았다고 하시더군요. 가슴이 아프면서도 ‘내가 단순하게 도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죽음에 임박한 어느 분이 인생이 깃들어있는 공간을 순례한다. 지나온 인생을 되짚어 본다. 벌겋게 달구어진 쇠덩이를 쇠망치로 메질하는 낮익은 광경과 소리들. 그 때 사갔던 연장들과의 추억들. 자신과 같이 늙어가는 백발의 주인장과의 한토막 대화. 오래된 것들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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