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루이쉐의 6년 교육 – 아이의 정신이 성장하는 유아기에 필요한

01
금요일 반차를 내고 퇴근했다. 오후 5시. 어린이 집 하원시간에 맞추어 갔다. 3층 계단을 오르는데 아내 목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 아이가 놀란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오는 경우는 드물다. 반가워하며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애교를 부린다. “아빠아~”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에 와 아이와 함께 씻는다. 차가운 물 세례에 아이가 “차가워~차가워” 한다. “시원하다고? ” 웃는다. 아이도 함께 웃는다. 가벼워진 몸으로 자리에 눕고 동화책을 읽는다. 돼지가 등장한다. 아이에게 제안한다. “우리 돼지 보러 동물원 가면 어떨까?” 아이가 말을 받아 제안한다. “좋아. 주말에 동물원가면 어떨까?” “좋아~” 토요일은 더웠다. 일요일도 더웠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를 뵙고 점심을 먹는다. 아이가 기억력이 좋다. 할아버지 뵙고 난 후에 동물원 가면 어떨까 거듭 제안한다. 재난본부에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무더운 오후 양주시 근방에 숲속의 동물원으로 향한다. 어린 돼지가 돌아다닌다. 아 돼지가 있다. 쓰다듬고 논다. 주인장이 곤충, 도마뱀, 뱀, 미꾸리지, 개구리를 손 위와 목주위에 올려준다. 아내도 신이났다.

02
쑨루이쉐의 아이의 정신이 성장하는 유아기에 필요한 “6년교육”을 읽다. 몬테소리 교육관에 대한 해설이다.

“유아기에 필요한 것은 어른의 ‘주입’이 아닌 아이가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를 잘 지킨다면 아이는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P15

“아이를 사랑하는 문제는 우리의 현재의 경험으로 아이를 대해서는 안됩니다. 현재의 경험은 우리가 성장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P7

“저자의 깨달음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의 지능은 감각에서 오고, 아이의 감각 경험은 어른이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개성과 창의성은 같아서 가르칠 수 없다. 욕을 얻어먹거나 매를 맞고 자란 아이는 고난이 사물의 본질을 볼 능력을 잃게 만들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이는 일생 동안 고통스런 유년 시절과 투쟁하고 자존감을 찾으며 자신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은 밥을 먹는 것과 같다. 소화를 하면 우리의 일부분이 된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다.” P8

“인류의 성장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큰 진리는 사랑이다. 사랑 없는 성장은 이 세상의 가장 큰 죄악이다.” P123

“이런 발전을 위해서는 아이가 스스로 자유를 가져야 한다. 이 자유는 영혼의 자유다. 한 아이가 물장난을 치고 싶어한다. 물장난은 지금 아이의 발전에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속에 물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몬테소리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나 했다. 한 아이가 외할머니 집에 왔다. 아이는 잔디위 수도꼭지를 틀러 물장난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무서워서 망설였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물장난 치고 싶으면 쳐” 그러나 아이는 말했다. “틀면 안돼요. 보모 아주머니가 물장난 치면 안된다고 했어요.” 외할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지금 없어, 외할머니가 틀어줄게.” “안돼요. 그래도 안 돼요.” 아이는 보모의 노예가 되었다. 이미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인격은 대체되어버렸다.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자신을 억압하면 인격과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억압은 분명히 연속적인 행위이며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억압했다면 어떻게 하죠?”하고 묻는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이 있다. 적극적인 면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다면 아이의 성장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소극적인 면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면 아이의 인격은 점차 다른 것이 되어버려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독립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몬테소리는 “독립할 수 없다면 자유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때 자유는 소중한 자질로 변한다. P124~125

03
육아란 무엇일까? 문득문득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아이였다. 육아의 기간은 아빠, 엄마 스스로가 아이가 되는 건 아닐까? 어른이면서 아이가 되는 시간. 자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을 반추하고 되돌아보는 시간. 그리고 아이에게 경험을 선사하는 시간. 저자의 주장처럼 아이는 설계하여 주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과 시간을 마련하고 또한 우리자신도 아이의 시간을 갖는 것. 아이에게 더 많은 자유의 시간을 허하는 것. 그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는 것. 아이의 시각과 시점에서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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