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환자의 순례

한국일보 [신한국견문록] 서울 은평구 불광대장간을 읽다가 대장간 주인장의 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얼마 전에 단골손님 한 분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는 중에 불광대장간을 찾았다고 하시더군요. 가슴이 아프면서도 ‘내가 단순하게 도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죽음에 임박한 어느 분이 인생이 깃들어있는 공간을 순례한다. 지나온 인생을 되짚어 본다. 벌겋게 달구어진 쇠덩이를 쇠망치로 메질하는 낮익은 광경과 소리들. 그 때 사갔던 연장들과의 추억들. 자신과 같이 늙어가는 백발의 주인장과의 한토막 대화. 오래된 것들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마음

“주여,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언제나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

올바른 결정은 어떻게 하는가/필 로젠츠바이크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기도문.

(1) 신과 일대일 기도한다면 이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2) 우리 앞의 현실과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는 위 기도문에서 제시한 지혜를 갖춘다면 상당부분 경감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소설을 권하는가에 김연수, 배수아 작가의 대답

경향신문에 김연수, 배수아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좋은 소설을 소개하는 ‘소설리스트‘의 김연수, 소설과 소설평의 격월간지 ‘악스트’의 배수아. 인터뷰 말미에 “왜 소설을 권하는가?” 답변이 인상적이다.

김 연수= 다른 사람을 견디면서 그에게 귀기울이는 건 굉장히 힘들다.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그런 일과 비슷하다. 에너지가 필요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게 소설 읽기다. 나는 소설이 재미있어서 보지만 그 정도의 사회적 용도가 있다고 본다.

배 수아= 나는 매혹당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는다. 영화와 비교하면, 소설이 언어로 표현하는 매혹은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무한대에 가깝다. 매혹당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매혹시키는 일만큼이나. ‘악스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봐주면 좋겠다.

 

 

 

 

 

매드맥스를 보고

1
절망에서의 결정 – Cross A Desert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향의 가족들을 만났지만 구원은 없었다. 구원의 공간은 오염되었고 늙어버린 옛 사람들만 남아 있다. 죽음을 무릎쓰고 사력을 다해 여기까지 왔지만, 그들 앞에는 모래사막만이 현존했고 리더인 퓨리오사는 절규했다.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신과 만났으리라.

밤은 고요했고 별은 빛났다. 그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전쟁 치룬 하루의 끝에서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리더는 오는 아침에 출발을 준비했다. 퓨리오사는 소금사막을 건너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름이 다하기 전까지 사막을 건너 물이 있는 어느 곳으로 가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2.
역발상의 결단 – Come back to a place where they have lived
가족을 지키지 못했던 맥스를 지배하는 그림자는 죄책감이었다. 홀로 살아남은 자의 몫이었고 생존은 형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대신 사막횡단하는 그들과 함께 하는 보호자의 역할을 택하지 않고 새로운 결단을 제안한다. 위험한 상황, 죽음에 노출되는 적들이 기다리는 곳을 통과하자고 한다. 더이상 밖에서 유토피아를 찾지 않고 가느다란 전술적인 기대를 품고 결단한다. 물이 있는 곳. 물이 희망의 근거다. 그들은 그들이 살던 어둠의 곳으로 출발한다. 생존 자체가 우선했다면 얼마간 생존이 가능한 사막길을 결정했으리라, 절망의 땅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길을 지나가자고 한다.

 

3.
절망의 근거는 정치 – mad max

영화는 보여준다. 핵전쟁으로 망한 세상에 다시 정치가 절망을 만든다. 사람들은 받아들였고 그 체계안에서 쇄뇌하고 쇄뇌당했다. 절망해서 구원을 바랬고 절망으로 종교적이 되었다. 구원을 위해 생존했고 구원받기위해 목숨을 버린다.

영화 엔딩에서 묻는다. “희망이 없는 삶을 헤매이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최후로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보여준다. 희망과 구원 없음을. 오로지 절망에서의 결정과 결단의 연속임을. 그런 미친 사람들이 존재함을.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희망적인 일들이 벌어짐을.

영화 ‘스틸 앨리스’ –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앨리스입니다”

에이케이스 미디어에 썼던 글을 옮깁니다.

* 피크15와 에이케이스는 이달의 영화로 “스틸 앨리스(Still Alice)”를 보았습니다. 주인공 앨리스는 퇴행성 뇌질환인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겪습니다. 점점 뒤로 갈 뿐 회복되지 않고 나아지지 않습니다. 영화는 상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i”

영화는 리사 제노바의 ‘STiLL AliCE”를 원작으로, 하버드 대학 신경학 박사과정이던 리사 제노바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에게서 모티브를 얻어서 책을 썼다고 합니다. 환자 본인의 마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인 이 책의 표지 커버에 눈이 갑니다. 윤곽이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나비’는 알츠하이머병을 겪고 있는 자신을 은유합니다. 타이틀에 “I”는 소문자 “i”로 표기되어 상실되어가는 자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의 상실은 정체성을 무너뜨립니다. 사회적 관계를 어렵게 합니다. 영화는 상실의 고통보다는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힘겹지만 나아가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2. “Language”

“대부분의 아이들은 4세 이전에 그들의 모국어를 깨우칩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대단한 능력을 얻는 것일까요?….. 저는 여러분들께 이 아이들의… 이 아이들의…(잊어버림) … 아이들이 주어진 언어의 단어들을 습득하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기억과 계산의 관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영화의 첫장면. 언어학 교수인 앨리스는 언어 전문가로서 학생들 앞에서 아이들의 언어습득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기억의 중요성을 강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앨리스는 단어가 기억나지 않습니다. 맥락을 잃습니다. 태어나서 본능적으로 단어를 기억하고 언어를 배우지만 영화는 기억을 상실해가는 앨리스를 통해 언어의 상실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 삶에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합니다. 우리 곁의 사람들과 나누는 하나하나의 말과 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입니다.

3. “Still”

“저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기억 못하는 제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인생에 행복한 날들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고통 받고 있다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not suffering), 힘겹지만 애쓰고 있는 중(struggling)입니다. 그러한 것들에 부분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고 싶습니다.”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치료협회에서 연설을 합니다. 여기서 앨리스는 인식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병이 깊어졌을 때,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은 환자들을 우스꽝스럽고 무능하게 보이게 합니다. 그녀는 그런 모습은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일 뿐이지, 그들 자신의 본질이라 아니라 합니다. 그와 같은 이상한 모습 안에는 그들은 아직도 투쟁하고 있으며, 여전히 살아있으며, 계속해서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요?

4. “Moment”

“그래서, 순간을 살아라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순간에 살아라.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상실의 기술을 완벽하게 통달하는 것에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자. ”

앨리스는 순간을 말합니다. 과거와 미래가 전제된 현재(the present)라 하지 않고 순간(Moment)을 강조합니다. 점점 그녀에게는 순간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쌓아온 기존의 관계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새로운 관계로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선생님으로서 기존의 설정된 사회적 관계는 그녀 자신은 물론 그녀 곁의 가족들도 달려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영화는 과거의 관계를 유지하고 복원하는 일에 채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함께 하는 순간’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5. “Love”

마지막 장면, 딸은 읽고 앨리스는 듣습니다. 우주비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딸은 앨리스에게 묻습니다.

“엄마, 이 이야기는 어떤 것에 관한 거에요?” “… 사랑” “맞아요. 엄마… 사랑에 관한 거에요”

영화는 딸과 앨리스가 교감하는 장면을 클로즈업 합니다. 딸은 앨리스 얼굴 가까이 다가갑니다. 앨리스는 딸의 얼굴을 찬찬히 살핍니다. 영화는 예전에 어린 딸과 앨리스가 해변가를 걷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순간을 함께하는 것, 필름처럼 한 장면을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막내 딸은 엄마와 함께한 그 순간을 간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