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원고지에

소설가 김탁환의 ‘원고지 – 어느 예술노동자의 황홀한 분투기’를 잠시 읽다.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기 위해서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사람들 속의 진심에는 왜 항상 눈물이 따르는가? 안타까운 일들은 여전히 있으며, 눈밝은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진실과 마주한다는 것, 안타까운 진실을 자신과 사람들 속에서 발견한다는 건, 언제나 얼마간의 눈물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런 영화가 있다. 첫 대목을 접하는 순간, 배우가 흘깃 나를 향해 눈길을 보내는 순간. ‘아, 이건 나와 같은 족속이 만든 거다.’ 그런 느낌이 나는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랬고 ‘박하사탕’이 그랬고 오늘 본 ‘파이란’이 그랬다. 그러면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막혔던 부분들을 저 감독들은 어떻게 뚫어나가나 찾기 시작한다.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삶은 흔히 죽음에 닿아 있다.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렇게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차디차게 보여준다. 이거다. 이토록 추잡스럽고 속된 것이, 돈에 목숨 거는 것이, 속이고 속는 것이 삶이다. 삶에 대하여 거창하게 논하는 새끼들 말, 전부 거짓이다.

인물들은 점점 고립된다. 자기가 몸 담고 있던 공간에서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왜 고립되는지, 그 고리븨 결과가 어떨 것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구석이 있다. 깡패든 밤무대 밴드든 사기꾼이든 그 딴 건 중요하지 않다. 많이 타락했어요 그들은 자신 안에서 한결같은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그리고 삶을 바꾸고 싶어한다. 아, 그 바꿈은 성공하지 못한다. 바꾸려 했다는 이유로 다치고 죽는다.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바꾸려 하다간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들도 그런 위험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바꾸겠다고 한다. 바꾸지 않고는 단 하루를 살 수 없다 한다.

삶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서른 살이 넘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누가 내 삶을 충고하면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그래도 삶을 바꾸어야 한다면 아, 그 깨달음의 무게는 얼마나 클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대부분 ‘진심’이라고 하는 그 무엇. 나를 변함없는 나로 만들게 하는 그 무엇. 그리고 그 무엇에는 항상 눈물이 따른다.  – p112-113(김탁환의 원고지. 2003년 6월 7일 )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두려운 마음’

일본 경영의 신(神)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책 ‘일과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를 읽다가 발견한 대목.

사람의 마음에 그런 두려움이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야 한다네, 물론 두려움에 위축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일종의 조심스러움같은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 하지. 신앙을 갖고 있으면 ‘신에게 죄송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네. ‘세상이 무섭다’라거나 ‘세상이라는 눈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지.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은 그런 두려움을 가지면 자신의 몸가짐을 조심하기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줄어든다네. 이렇듯 두려움을 아는 것이야말로 바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네. p68~69 일과 인생에 불가능은 없다/마쓰시타 고노스케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드러내어 사람의 길을 밝힌다. 사람의 감정중에 근원적인 두가지, 감사하는 마음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이 두마음에서 인정(人情) 같은 따뜻한 감정이 생겨나며 감사와 두려움을 모른다면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할 수 없다 했다.

 

말기암 환자의 순례

한국일보 [신한국견문록] 서울 은평구 불광대장간을 읽다가 대장간 주인장의 한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얼마 전에 단골손님 한 분이 오랜만에 오셨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서 추억이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는 중에 불광대장간을 찾았다고 하시더군요. 가슴이 아프면서도 ‘내가 단순하게 도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죽음에 임박한 어느 분이 인생이 깃들어있는 공간을 순례한다. 지나온 인생을 되짚어 본다. 벌겋게 달구어진 쇠덩이를 쇠망치로 메질하는 낮익은 광경과 소리들. 그 때 사갔던 연장들과의 추억들. 자신과 같이 늙어가는 백발의 주인장과의 한토막 대화. 오래된 것들이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기도하는 마음

“주여,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언제나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 라인홀트 니부어

올바른 결정은 어떻게 하는가/필 로젠츠바이크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기도문.

(1) 신과 일대일 기도한다면 이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2) 우리 앞의 현실과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는 위 기도문에서 제시한 지혜를 갖춘다면 상당부분 경감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소설을 권하는가에 김연수, 배수아 작가의 대답

경향신문에 김연수, 배수아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좋은 소설을 소개하는 ‘소설리스트‘의 김연수, 소설과 소설평의 격월간지 ‘악스트’의 배수아. 인터뷰 말미에 “왜 소설을 권하는가?” 답변이 인상적이다.

김 연수= 다른 사람을 견디면서 그에게 귀기울이는 건 굉장히 힘들다.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그런 일과 비슷하다. 에너지가 필요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게 소설 읽기다. 나는 소설이 재미있어서 보지만 그 정도의 사회적 용도가 있다고 본다.

배 수아= 나는 매혹당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는다. 영화와 비교하면, 소설이 언어로 표현하는 매혹은 스펙트럼이 훨씬 넓고 무한대에 가깝다. 매혹당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매혹시키는 일만큼이나. ‘악스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봐주면 좋겠다.